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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1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4. 1. 11. 15:01 감상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어슬렁 집 앞 영화관에서 올해 처음 본 영화는 벤 스틸러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였습니다.

원래 토요일 아침은 일주일 중 가장 여유가 있고 관대한 시간입니다. 말 그대로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닐까요 - 적어도 제겐 그렇습니다. 모처럼 일찍 일어난 것 만으로도 기특한 상황인데다가 - 원래 이 시간 대가 그렇겠지만 - 조용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되니 어떤 영화라도 기본 점수는 주면서 시작할 수 있겠다 싶었죠.

주인공인 월터 미티(벤 스틸러 분)는 라이프지의 네거티브 필름 관리자로 가끔 멍때리며 여러가지 상상을 하는 것이 버릇인 현실감 떨어지는 캐릭터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일찍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 늘 큰 변화없이 성실한 생활을 해온 월터에게 큰 변화가 생기는데, 바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라이프사의 구조 조정입니다(실제로는 2007년에 폐간이 되었죠). 이제 마지막 호를 출간하고 온라인 회사로 전환하게 되는 상황에서 표지로 사용해야 하는 네거티브 필름을 찾아야 하고, 이 사건으로 월터는 평생 상상으로만 만족해오던 생활들을 현실로 맞이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두시간이 넘어가는데 보면서 시간이 더디게간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흐름이 빨라 정신없이 몰려가다가 영화가 끝나버리는 블록버스터형 구성은 아니지만, 중반 이후 월터가 필름을 찾기 위해 여행하는 장소들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계속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판타지 영화는 아니지만 그 것으로 분류하고 싶어지는 제 마음을 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느낌 때문인지 토요일 아침이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개연성에 대한 의문이 드는 부분들도 크게 거슬리지 않았구요.
월터의 회사 이름인 ‘라이프’는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에 새로운 것들이 기존을 대체하고 또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뒤 아날로그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치와 멋들을 한껏 보여줍니다. 디지털, 전자문서, 빠른 업무 프로세스, 효율적인 리펙토링. 늘 당연하게 쫓던 것들을 든든하게 뒷받쳐주고 있는 아날로그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인터넷에 검색어 한 번만 쳐도 수천 장의 사진들이 내 피씨 브라우저 위에 뜨게 되지만, 그런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수십 시간 수십 일을 인내하며 순간을 기다리는 사진작가들. 그들이 보내온 네거티브 필름들을 현상하고 관리해주는 사람들. 그들은 가장 만족스러운 사진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 장의 네거티브 필름으로도 수십 번 현상-정착-수세-건조를 거쳤겠죠. 그리고, 그 사진에 멋진 기사를 걸기 위해 문장을 쓰고, 고르고, 지우고 하는 기자들. 그들의 아날로그적 장인정신이 없다면 아무리 편리하고 멋진 인프라 아래 라도 잡지나 기사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할껍니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 주인공이며 그것이 또 한 편의 영화라는 것, 또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담담하게 전달해 줍니다. 다이나믹했던 월터의 경험이 그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전환기를 마련해 주었겠지만, 역시 평범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던 과거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요. 이 영화는 그것을 사진작가의 마음을 빌어 마지막 라이프지의 표지에서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가 보면서 눈물 흘릴 영화는 아니다 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거든요. 저는 마지막 부분에 월터의 어머니가 월터에게 버려진 줄 알았던 지갑을 건넬 때에도 눈물이 났었는데, 그부분은 진심 대체 왜 눈물이 났었는지 설명을 할 수가 없네요.

토요일 아침에 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하고 멋진 영화로 별 다섯 개를 전부 주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은 심심하기도, 뭔가 완벽한 해피앤딩도 아니기도, 엄청난 반전이 있지도..라는 의견에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저는 이 따뜻했던 영화를 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꼭꼭 밀어 넣어 두겠습니다.


하나 덧. 이 영화에서 월터가 헬기로 이동할 때에도 그래비티에 삽입 되었던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가 흘러나와요.

posted by zs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