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독서를 참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책을 스캔하는 것을 좋아하죠. (뭘까 이건..) 왠지 이 나이에 쓸 팁은 아닌 것 같지만, 혹시 책을 스캔하고 싶은 니드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술을 적어 봅니다. 단, '대충대충 그냥 되는대로 해서 글자와 여백을 분리해 인식할 수만 있음 되지 않나?' 하는 사람들은 읽지 말아 주시길. 날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할 것 같음.

스캔은 하고 싶은데, 책을 버리고 싶진 않아

하시는 분들. 그 기분 압니다만 그냥 자르는 게 맘 편합니다.

 

책을 잘라내다

사실 책을 자르는 도구가 없으면 책을 커터로 잘라내는 것도 큰 일입니다. 예쁘게 절대 안 잘라져요. 힘을 들여 자르다 보면 커터길이 점점 휘어져 책 가장자리가 비뚤어지게 됩니다. 이미 스캐너에 밀어 넣기 전에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죠. 제대로 안 잘린 부분이 있으면 말려들어가다가 잼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종이가 구겨지고 찢어져 스트레스 두 배. 그 이유로 저는 커터질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세단기를 구매했죠. 책머리가 툭 떨어져 나가는 게 좀 중독된다고나 할까. 쥐포나 오징어 자를 때도 쓸 수 있으니 하나 구매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자른 책을 스캔하다

스캐너는 양면스캐너를 추천. 만약 단면스캐너라면 머리를 좀 쓰셔야 해요. 각 방향으로 먼저 스캔을 하기 때문에, 좌우별로 잘 묶어서 스캔 시간별로 소팅을 하셔야 합니다. 좌우 파일명을 엇갈리게 정의해 주시면 이름순으로 소팅해서 편하게 구분하실 수 있습니다. 말로 하니 설명을 잘 못하겠네. 해보시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게 될 거예요. 양면이면 이런 단계를 건너뛰어도 되죠.

 

책을 pdf로 만들다

이건 정말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아이패드 등으로 볼 때에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e-ink단말기로 보시는 분들은 작은 화면과 해상도 안에서 최대한 꽉 차게 보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최대한 텍스트가 있는 부분만 잘라내야 합니다. OCR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맨 밑의 페이지 넘버는 잘라내는 게 편하죠. 전체적인 레벨도 잘 조정서 글자를 진하게 해 주세요. 리더기에 글자를 진하게 하는 기능이 의외로 없는 게 많아서... 

 

이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스캔은 하고 싶은데, 책을 버리고 싶진 않아

네. 이분들. 고행의 길을 가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조언 들어갑니다. 이미 이 길을 선택하신 당신은 끈기 있는 성실한 성격의 소유자. 작은 미물을 소중히 여기고,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 쪼잔한 성격에 시간은 많은..(이하 생략) 이분들은 '책을 잘라내다'는 필요 없죠. 하지만, 그의 두세 배 고통스러운 '책을 스캔하다'를 견뎌 내야 합니다.

 

책을 스캔하는 일은 온전한 정신으로는 힘듭니다. 하지만, 책을 pdf로 만들 때 최소한의 노력을 들이기 위해서는 스캔을 잘해야만 한다는 게 핵심이죠. 여기에서는 고퀄리티로 책을 스캔하는 방법과 신경 써야 하는 포인트들을 짚어드립니다.

 

똑바로 스캔한다

똑바로 스캔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책을 잘 펴줍니다. 어렸을 때 교과서 잘 펴지라고 부모님들께서 책머리를 꺾어주셨던 분들은 알 듯. 우리 엄마는 안 그랬지만... 그게 뭔지 이해가 안 가시는 분들, 죄송합니다. 더 이상 설명을 잘 못하겠음. 우선 책을 잘 펴야 하고, 스캔하는 유리면의 왼쪽/위쪽 모서리에 책을 잘 맞추어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펼쳐 먼저 유리면에 밀착하고 왼쪽/위쪽으로 책을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리고는 스캔되는 순간 책을 위에서 눌러줍니다. 생각보다 손목 아작 포인트임. 

 

연속적으로 버튼을 누른다

책의 두께에 따라 다르지만 책 한 권 스캔하는 시간은 아주 깁니다. 이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리듬을 탈 필요가 있죠. 스캐너의 램프가 복귀를 하는 동안 예술적으로 책장을 넘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멈추는 소리를 잘 듣고 바로 스캔 버튼을 다시 눌러야 합니다. 익숙해지면 스캔램프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경이를 마주하게 됨.

 

손목에 무리를 최소화한다

책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작업이 권당 보통 150-200번 정도 발생하게 되는데, 손목에 무리가 안 갈 수가 없죠. 그렇다고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책장을 넘길 때 최소한의 높이로 책을 들어 몸 앞쪽으로 당긴 뒤 90도만 틀어 책장을 넘기고 다시 밀어 넣습니다. 책을 180도 뒤집어 책장을 넘기고 다시 뒤집는 작업을 하면 하루에 한 권 이상 스캔하기 힘듭니다.(사실 어떻게 하든 하루에 한 권 이상은 무리이긴 함) 눈으로 다음 페이지를 확인하고 싶겠죠. 하지만 손목 아작 나는 속도를 늦추려면(방지는 불가능) 자신을 믿으세요. 58페이지 다음에는 60페이지가 보이도록 넘겼을 거라고 확신을 가지세요. 노하우는 없습니다. 들이는 시간이 보상해 주는 아주 정직한 작업임.

 

책장을 잘 넘긴다

책장을 넘길 때의 디테일입니다. 책 등이 위로 향한 상태에서 90도만 틀어 책장을 넘긴 후 다시 뒤집을 때 손바닥으로 책 아랫면에 댄 상태로 유리면에 밀어 넣으세요. 책이 구겨지거나 밀려 스캔되지 않게 할 필요가 있으니까. 잘못 스캔된 부분이 너 다섯 군데만 발생해도 시간이 3~40프로는 더 걸립니다. 중간에 페이지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위치 찾고 잘못된 파일 삭제하고 재스캔한 파일의 파일이름을 변경해 주고 등등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음.  

 

페이지 부분을 가린다

책의 페이지 부분은 사족입니다. 소제목이 있긴 하지만, 그 부분 때문에 책의 세로 길이가 길어지게 되어 화면 안에 꽉 차게 볼 때 글씨가 너무 작아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하는데 이 작업을 pdf를 만들 때 하게 되면, 이미지 한 장 한 장을 모두 보정해야 합니다.(해봤음. 다신 하고 싶지 않음) 스캔할 때 스캔유리면 위를 적당히 가려서 페이지 부분을 가리게 되면 텍스트만 꽉 차게 만들 수 있습니다. OCR 할 때도 깨끗합니다. 이건 진짜 팁이다.

 

흑백으로 스캔한다

그레이스케일이나 칼라로도 하고 싶겠지만, 책을 넘기면서 스캔할 때에는 과감히 포기하세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한 권 스캔하고 나면 두 시간 자야 됨.

 

자신만의 룰을 만든다

중간에 스캔을 쉬어야 하는 경우가 분명히 발생합니다. 갑자기 전화가 오거나, 택배 아저씨가 오거나, 음악을 다른 것이 듣고 싶어 진다던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던가 할 때 말이죠. 이럴 때 일을 보고 다시 앉으면, 스캔을 한 페이지인지 안 한 페이지인지 가물가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정말 귀찮아지죠. 저 같은 경우는 스캔을 한 페이지를 엎어두고 다른 일을 합니다. 다시 복귀해서는 어느 상황이던 페이지를 넘기고 스캔해야 하는 거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합니다. 이렇게 디테일한 가이드는 세상에 없음.

 

자신에게 가혹하라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페이지를 빼먹고 스캔한다던가 두 번 스캔한다던가 구겨져서 다시 스캔한다던가 하게 되면 나중에 파일 정리하는데 상당히 고생하게 됩니다. 무조건 완벽하게 스캔해야 함. 실수를 용납하지 마세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지만, 그냥 하지 마... 세단기랑 양면 스캐너 구매하시는 걸 추천. 나 이런 글 왜 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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